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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나희덕 / 푸른 밤 푸른 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첫 구절을 어딘가에서 읽고, 하루 온 종일 저 구절이 머릿속에 맴돌던 날이 있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걸었던 무수한 길들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라니. 이렇게 완.. 더보기
나희덕 / 석류 석류 나희덕 석류 몇알을 두고도 열 엄두를 못 내었다 뒤늦게 석류를 쪼갠다 도무지 열리지 않는 門처럼 앙다문 이빨로 꽉 찬, 핏빛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네 마음과도 같은 석류를 그 굳은 껍질을 벗기며 나는 보이지 않는 너를 향해 중얼거린다 입을 열어봐 내 입속의 말을 줄게 새의 혀처럼 보이지 않는 말을 그러니 입을 열어봐 조금은 쓰기도 하고 붉기도 한 너의 울음이 내 혀를 적시도록 뒤늦게,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