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자 미상
봄을 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름이 오면 잊을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니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너는 여름이었나
이러다가 네가 가을도 닮아있을까 겁나
하얀 겨울에도 네가 있을까 두려워
다시 봄이 오면 너는 또 봄일까
*
메리제인 요코하마 / 황병승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이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꾸어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요코하마
*
나는 연필이었고, 그래서 흑심을 품고 있었다.
당신의 마음에 좋아해요, 라고 쓰고 싶었지.
2줄 남짓한 문장만으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낸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라고 이 문장을 보고 느꼈다.
사람의 감정과 은유의 절묘함.
*
- 가치란 사회적인 맥락에서 성립하는 것.
- 오늘 날의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
- 미움받을 용기 中 -
*
책을 읽다 보면 작가들의 통찰력이 드러나는 글과 문장들을 볼때 감동받는 때가 종종 있다.
정말로 단 한줄의 문장인데도 그 안에서 사회에 대한, 혹은 또 다른 주제에 대한 통찰과 날카로운 감각이 보이는 느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애매모호함을 정리해주는 기분이라 속이 시원해진다.
특히나 그것을 느꼈던 것이 알랭 드 보통의 책이나, 리스본행 야간열차.
페이지마다 그런 통찰이 압축되어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메모하다가 그만두고 책을 사야겠다, 라고 마음먹게 되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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