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란 그저 물리적인 배고픔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랑에 배고프고, 우정에 배고프고, 시간에 배고프고, 진짜 배가 고픈 것이므로 우리 삶에 대한 가장 거대한 은유다.
내 인생의 소울 푸드가 있다면 아마도 두 손으로 꽁꽁 만들어놓은 이 주먹밥일 것이다. 꿈을 이루지 못해 힘들어하던 때, 더 좋은 꿈을 꾸기 위해 달려가던 때, 그저 조용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먹던 따뜻한 밥.
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 사람들이 대피소에서 나누어준 주먹밥을 아껴 먹는 장면을 보며 그런 생각은 더 강렬해졌다.
- 백영옥
= 주먹밥에 대한 단상같은 글 한 조각.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라는 책을 읽고 백영옥 작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는데, 알고보니 예전에 봤던 아주 보통의 연애라는 책을 썼던 작가였다. 읽으면서 독특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빌린 소울푸드라는 책에도 백영옥 작가의 글이 있어서 신기했다.
허기란 물리적인 배고픔만이 아닐 것이라는 것. 아마 아니라고 단정지어도 좋을 법한 이 말엔 최근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허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떠한 것이든,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감정'이라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 그리고 백영옥 작가의 글 저 두줄이 나에겐 큰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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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친구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갔다. 빌려준 돈을 떼이기도 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 모략하는 걸 듣기도 했다. 연인에게 배신당한 것보다 충격은 더 컸다. 이별의 결론을 한편에 가정해두는 연인과 달리, 한번 맺은 친구는 끝까지 가는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완전히 보지 않게 된 친구도 있고, 다시 만나지만 지금도 내 편이 맞는지 망설이게 된 친구도 있다. 오래됐다고 친구는 아니며, 노는 친구는 그냥 아는 사람의 다른 말이라도 것도 알게 되었다. 기쁜 일, 슬픈 일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서바이벌처럼 '진짜 친구'가 가려졌다. 씁쓸하지만 잘된 일이다.
= 이 글에서는 한번 맺은 친구는 끝까지 가는 거라고 확신했다는 작가의 말에 끄덕끄덕,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해서 적어두었던 것.
그냥 아는 사람의 다른 말이라는 노는 친구. 그리고 내 편인지 아닌지 확신을 할 수 없어진 친구. 그렇게 하나 둘 서바이벌처럼 가려지는 친구라는 것이, 참 서글퍼지는 걸 보면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고 있고, 나에게도, 나의 주변에서도 이러한 서바이벌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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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이 전부라 생각하며 당신에게 집요했던 날들. 내가 내 마음도 모르고 전부를 안다는 듯 살았던 지난 모든 일이 그 넓은 호수에 비치는 듯했다. 거짓이 없었다. 호수는 비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서도 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결국 홀로 아름다워지는 일이 인생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 있으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 하지 못하는 마음이 어찌 마음인가? 마음에 비치는 그것을 투명하게 걸러내는 일. 흩트리지 않는 일. 당신으로 인해 내가 더 빛이 나고, 내가 있으므로 당신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일. 그것을 먼저 알아야 했다. 문득 생각해본다. 그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어느 복잡한 거리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 속에서부터 이어지는 이 곳까지의 거린느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 사이에 의지라는 간격이 있었다. 그것을 스스로 좁혀 만나지 않으면 결코 달라지지 않았을 마음들. 결국 희망 앞에서는 어떤 이유로도 외면당하지 않을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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