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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모든 요일의 기록

평일의 즐거움 찾기, 퇴근 후에 서점 들리기, 그리고 한 잔의 맥주 ​요즘의 버릇이라고 해야하나? 일상 속에서 사소한 나만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 아닌 노력을 하고 있다. 혼자서 타지 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 안그래도 복잡하던 머릿 속은 더 복잡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지면서 이런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즐거울까 라는 생각에 골몰하게 됐다. 혼자 있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어서 온전한 내 삶을 챙기지 못한 채 시간이 그저 그렇게 흘러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밀도 있는 삶을 살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같다. 그래서 퇴근 후의 시간을 조금 더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것저것 기웃 거리고 있는데 회사 가까이에 영풍문고가 있어서 빨리 마치는 날이면 들려서 조금씩 책도 읽고 오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이번 주에는 일찍.. 더보기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 중에서. + 10대엔 10대라 힘들었고, 20대엔 20대라 너무 힘들었다. 왜 이렇게 시간은 무정형이지, 왜 이렇게 나는 휘청일까. 사소한 상처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나이가 분명 있을텐데. 울음이 멈추는 나이가 나에게도 분명 올텐데. 그건 또 언제인가. 60이 되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고요한 시간이 드디어 내게도 찾아올 것 같았다. 어떤 자극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고요하게. + 쓴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의 하나이다. 생각을 시작했다. 가벼운 노트 하나와 연필을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오랫동안 중단했던 생각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고 사진들을 들추어 보았다. (중략)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보기
좋아하는 시와 몇가지 구절, 그리고 이야기 * 작자 미상 봄을 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래서 여름이 오면 잊을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니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너는 여름이었나 이러다가 네가 가을도 닮아있을까 겁나 하얀 겨울에도 네가 있을까 두려워 다시 봄이 오면 너는 또 봄일까 * 메리제인 요코하마 / 황병승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이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꾸어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 더보기
은희경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 지금 나의 선택이 나머지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런 생각 이제 하지 않는다.어딘가 조금 높은 곳에서 흘러낼려온 물줄기가 여울을 만나 잠깐 멈춰서 거기 담그고 있는 내 종아리를 휘감고 돌더니 다시 흘러간다.흘러오는 대로 흘려 만나고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려 한다. 예상도 안하고 돌아보지도 않게 되기를.교정을 마쳤으니 이제 일어나 창을 열어야겠다.'사람이란 한순간 곁에 모이는가 하면 어느 순간 돌아보면 아무도 없기도 한다. 마치 약속된 주기를 지키지 않는 밀물과 썰물처럼.'이것은 내가 썼던 소설의 한 구절이다. 초여름 초록의 무심과 무상을 넘어 지금은 나를 향해 어떤 물줄기가 흘러오고 있을까.주기는 지키지 않았지만, 밀물이어도 좋겠다. * 슬럼프나 정체현상 없는 고속질주도 끝없는 하얀 밤의 또다른 .. 더보기
취하라 / 보들레르 취하라 / 보들레르 늘 취해 있어라. 다른 건 상관 없다. 그것만이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그저 취해 있어라. 그러다 이따금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가 풀밭에서나, 그대 방의 적막한 고독 속에서 깨어나 취기가 반쯤 혹은 싹 가셨거든 바람에게나 새에게나 시계에게나 그 무엇이든 날아가거나 탄식하거나 흔들리거나 노래하거나 말하는 것에 물어 보라 지금 무엇을 할 시간인지... 그러면 바람은, 물결은, 별은, 새는, 시계는 대답하리라. "취할 시간이다! 취하라!" 시간의 고통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쉼없이 취하라!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원하는 것에. 더보기
백영옥의 소울푸드, 좋은 구절 몇 가지. 허기란 그저 물리적인 배고픔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랑에 배고프고, 우정에 배고프고, 시간에 배고프고, 진짜 배가 고픈 것이므로 우리 삶에 대한 가장 거대한 은유다. 내 인생의 소울 푸드가 있다면 아마도 두 손으로 꽁꽁 만들어놓은 이 주먹밥일 것이다. 꿈을 이루지 못해 힘들어하던 때, 더 좋은 꿈을 꾸기 위해 달려가던 때, 그저 조용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먹던 따뜻한 밥. 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 사람들이 대피소에서 나누어준 주먹밥을 아껴 먹는 장면을 보며 그런 생각은 더 강렬해졌다. - 백영옥 = 주먹밥에 대한 단상같은 글 한 조각.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라는 책을 읽고 백영옥 작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는데, 알고보니 예전에 봤던 아주 보통의 연애라는 책을 썼던 작가였다... 더보기
나희덕 / 푸른 밤 푸른 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첫 구절을 어딘가에서 읽고, 하루 온 종일 저 구절이 머릿속에 맴돌던 날이 있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걸었던 무수한 길들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라니. 이렇게 완.. 더보기
나희덕 / 석류 석류 나희덕 석류 몇알을 두고도 열 엄두를 못 내었다 뒤늦게 석류를 쪼갠다 도무지 열리지 않는 門처럼 앙다문 이빨로 꽉 찬, 핏빛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네 마음과도 같은 석류를 그 굳은 껍질을 벗기며 나는 보이지 않는 너를 향해 중얼거린다 입을 열어봐 내 입속의 말을 줄게 새의 혀처럼 보이지 않는 말을 그러니 입을 열어봐 조금은 쓰기도 하고 붉기도 한 너의 울음이 내 혀를 적시도록 뒤늦게,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게 더보기